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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복지로 은밀한 학교폭력 ‘사이버 왕따’ 기승

협의회 0 2,844 2013.11.22 09:48
경기도에 사는 이모(14)양은 스마트폰 앱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의 댓글 알람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댓글로 공개적인 따돌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이양이 사진을 올리거나 글을 남기면 같은 반 친구들이 '찌질한 X' '저 X 왕따라며' 등의 악의적인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항의하고 지워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댓글을 다는 친구들은 몇 명에 불과하지만 대화방의 모든 친구들에게 공개된다는 생각에 수치심은 더 커졌다. 따돌림이 계속되자 친구들은 이양의 친구 신청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은밀한 따돌림은 올해 중학교 진학 뒤에도 지속됐다. 이양은 결국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앓게 됐고 참다 못한 이양의 부모는 학교에 가해학생들을 신고했다.

그러나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가해학생들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받은 징계는 '반성문'과 '교내봉사'. 학교에서 내릴 수 있는 처벌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양과 부모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이보다 무거운 징계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징계를 받은 가해학생들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양의 실명 대신 별명이나 이니셜을 쓰면서 따돌림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이 사이버공간에서 은밀한 왕따로 진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횡행하던 학교폭력이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만나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대응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2년 공개한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생 5명 중 1명 이상이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욕설과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사이버 왕따를 폭력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화로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신고와 처벌은 미비한 수준이다. 2012년도 교육부 정보공시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신고돼 조치를 받은 폭력 유형 중 사이버 폭력에 해당하는 경우는 전체의 2.9%에 그쳤다.

학교에서 사이버 왕따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교내봉사, 사회봉사, 출석정지, 강제전학 등 징계를 내릴 수 있지만 처벌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어 학교마다 처벌 정도가 다르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이 신고한다고 해도 물리적인 폭력에 비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전학 이상의 강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학교폭력 예방교육과 대처방식은 여전히 물리적인 학교폭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3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사이버 왕따가 처음으로 학교폭력의 한 유형에 포함됐으나 아직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법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교육을 통한 사이버 왕따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김승혜 학교폭력화해분쟁조정센터 부장은 "집단 따돌림에 대한 대책은 쏟아졌지만 정작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버상 따돌림은 간과되고 있다"면서 "어디까지가 학교폭력인지, 어떤 행동이 잘못인지, 사이버 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라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호 한국청소년개발원 연구위원은 "미국 50개 주 중 49개 주에 따돌림과 관련된 법안이 있을 정도로 해외에서는 사이버 왕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기존 왕따와 달리 또래 커뮤니티 안에서 은밀하고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는 만큼 관련 제도를 세분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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